성균관 명륜당, 대성전, 그리고 과거시험 생원시 진사시 식년시

 삼국시대에는 불교, 고려시대에도 불교, 그러나 조선시대에는 유학이 나라를 이끈 근본 이념이었다. 유학을 공부한 사람들은 서당에서 천자문 소학 동몽선습 등을 공부하고, 향교나 서원을 거쳐, 한양의 성균관에 입학하여 입신양명을 꿈꿨다. 

성리학과 신진사대부

 고려 원나라 간섭기에 공민왕이 등극한다. 그는 그동안의 원나라 풍습을 없애고, 반원 개혁정치를 추구한다. 이때 지배세력을 권문세족이라고 부른다. 원나라와 결탁하여 권력을 휘둘렀던 사람들이다. 공민왕이 반원정책을 추진하자 이들은 공민왕을 암살하려고 했으나, 원나라 공주이자 공민왕의 부인인 노국공주의 도움으로 공민왕은 반원정책을 추진할 수 있었다.

  기철로 대표되는 반원 세력을 몰아내고 새로운 정치 이념인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사대부들을 지지한다.

성균관 입학, 명륜당과 대성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나아가 입신양명을 꿈꾼 선비들은 성균관에서 기본적으로 6년간의 교육과정을 수료한다.  사서오경을 주로 공부하는데, 사서는 대학 논어 맹자 중용, 오경은 시경 서경 역경 예기 춘추였다. 성균관은 소과인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들이 주로 입학할 수 있었다.

 

명륜당: 유생들에게 유학을 가르치던 건물이다.

대성전: 공자의 위패, 증자 맹자 안자 자사 등 사성, 우리나라 18현 등의 위패를 모셨다. 옛 선현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을 석전대제 또는 문묘라고 한다.

생원시: 유교 경전에 대하여 테스트하는 시험

진사시: 시나 문장을 짓는 시험

식년시: 3년에 한번 과거 시험을 보는데 문과에서는 33명이 합격했다.

-나라에 행사나 경사가 있을 때 과거시험을 보기도 했다.

백원동서원과 서원 철폐

주세붕이 세운 최초의 서원, 고려 후기 대학자 안향의 위패를 모셨다. 나중에 국가에서 인정한 서원이라는 의미로 사액을 내렸다. 사액은 현판을 의미한다. 그래서 백운동서원은 최초의 사액서원이 되고, 소수서원이라고도 불린다. 이후 전국 각지에 서원이 세워진다. 하지만 붕당 조직, 탈세, 백성들 착취 등을 하면서 서원은 국가 경제에 파탄을 초래한다. 그래서 흥선대원군은 서원을 47개소만 남기고 철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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