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366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 정의구현사제단 김승훈 신부 유신시대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가 유린당했다고들 한다. 1974년 7월 천주교 지학순 주교는 양심선언을 한다. 유신헌법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의 의도와는 다르게 폭력과 공갈에 의한 국민투표이므로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된다고 말했다. 지학순 주교는 이 양심선언으로 구속이 되고, 15년 형을 받는다. 지학순 주교가 구속되자 이를 반대하며 일어선 사람들이 있었으니 바로 천주교의 젊은 신부들이었다. 1974년 9월 23일 지학순 주교의 석방, 유신 철폐, 민주주의를 주장하며 300여명의 젊은 신부들은 을 결성한다. 당시 우리나라에는 1000명 정도의 신부님들이 있었는데, 그중 300명이 모였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컸다는 것인지 알 수 있다. 함세웅 신부는 당시 명망있.. 2021. 2. 26. 공자와 안회의 일화 공자와 안회의 일화 중국의 위대한 사상가 공자는 자신의 도덕정치를 펼칠 왕을 찾아 나섰다. 공자 일행은 쉬지 않고 여행을 계속하였다. 많은 어려움이 이겨내며 오랜 기간 여행을 했던 공자 일행은 어느 산 속에서 잠시 쉬어가기로 했다. 쉬면서 공자의 제자 안회가 쌀 주머니를 열어보니 쌀이 얼마 남지 않았다. 걸어오면서 쌀알을 떨어뜨리며 온 것이었다. 식량이 다 떨어져 먹을 것이 없던 공자와 제자들은 산에 올라가 나물을 뜯고 먹을 것을 찾았다. 배가 고프니 나물이라도 먹을 작정이었다. 그렇게 주린 배를 나물로 채웠다. 그 다음 날도 나물을 먹고, 그 다음날도 나물을 먹었다. 나물만 먹으니 허기가 가시지 않았다. 그래도 산 속을 벗어나면 먹을 것이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갖고 앞으로 나아갔다. 제자들은 너무나 .. 2021. 2. 22. 정조와 화성 그리고 사도세자 조선 19대 왕 숙종은 장희빈 사이에서 경종이 태어난다. 또 숙종과 무수리 숙빈 최씨 사이에서 연잉군 후에 영조가 태어난다. 숙종의 뒤를 이어 경종이 왕위를 잇는다. 하지만 경종은 몸이 건강하지 못하고, 후사도 없었다. 경종 집권파인 소론은 늘 이것을 걱정하고 있었다. 야당 격인 노론은 경종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연잉군을 차기 왕으로 점찍고 연잉군에 붙어 선다. 그리고 경종에게 후사가 없으니 세제를 책봉하고, 경종이 몸이 편찮으니 세제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라고 간언을 한다. 경종의 사망 경종은 연잉군에게 대리청정을 시킨다. 소론에 의해 자신을 지지하던 노론 세력들이 다 쫓겨나거나 죽임을 당했으니 연잉군도 매우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된다. 하루는 아픈 경종에게 쾌차하라는 의미로 감과 간장게장을 .. 2021. 2. 18.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간 사람들 파독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에 간 사람들 1950년 한국 전쟁 후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못사는 최빈국 중 하나였다. 미국에서 무상 원조로 간신히 연명하며 살아가던 시대였다. 그런데 미국이 무상원조에서 유상원조로 정책을 바꾼다. 유상 원조를 받으려면 돈을 갚을 수 있도록 경제계획을 수립해야 했다. 1963년은 우리나라 외환보유고가 1억달러 미만으로 어떻게 해서든지 차관을 들여와야했다. 우리나라도 계획을 수립하였으나 미국은 돈을 갚을 수 없는 계획이라고 판단해서 차관 요청을 거부했다. 이때 서독을 새로운 외화 획득의 대안으로 봤다. 당시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불리울 만큼 경제가 활성화 되어 많은 노동력이 필요하던 시절이었다. 서독의 막장에서 일할 서독행 광부 모집을 하였다. 20~35살의 젊은 사람들.. 2021. 2. 17. 이전 1 ··· 85 86 87 88 89 90 91 92 다음